응답하라1994 배경스토리, 이상민과 서태지

2013.10.08 09:51

응답하라1997의 배경은 다름 아닌 원조아이돌이라 불리는 H.O.T를 좋아 하는 소녀(정은지)와 그 소녀를 좋아 하는 남자(서인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듯이 응답하라1994에도 배경스토리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응답하라199494학번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다룬 응답하라1994, 서태지와 이상민이란 아이콘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

 

음악 + 메시지 + 춤

 

삼박자가 어울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음반판매량 자체로만 보면 당시에도 이미 신승훈이 더 앞섰지만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이라 했던 것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경우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건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회오리춤'은 수년전의 '텔미'춤이나 요즘의 '직렬5기통(빠빠빠)'춤 이상의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시대적 배경도 봐야 하는데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하이텔이 막 서비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이었기 때문에 음악과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라디오 였고 둘째는 워크맨으로 녹음해 듣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들 사이의 입소문과 더블데크로 복사해 듣는 방법이었죠.

 

요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중고 학생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펜팔로 이성친구를 찾고, 오백원짜리 미니 가사집을 사거나 아니면 일일이 워크맨으로 가사를 적어가며 노래가사를 외워야 했으며, 이성친구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선불카드를 사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많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제한된 정보로 인해 온갖 소문이 돌기도 했죠. 아무튼 서태지의 음악이 퍼진 경로는 개인적 경험이긴 하지만 반 친구 한명이 충격적인 음악이라면서 학교에 테이프를 가지고 온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서태지는 아직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고 있었고, 몇일 뒤에서야 TV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서태지 이전에 문화적 충격을 주며 크게 성공한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울림이 대표적이었죠. 현재도 활동중인 '김창완밴드'의 그 김창완이란 분이 내놓은 음반들은 그때까지 한국에서 한번도 접해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노래로 문화충격을 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서태지는 노래뿐 아니라 춤까지 곁들여 전에는 접해볼 수 없었던 엄청난 충격의 <음악세트>를 대중에 던져주었습니다.

 

 

농구대잔지와 이상민

 

이상민을 말하기 전에 연고전을 빼놓을 수가 없네요. 농구붐이 일기 전에는 프로야구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프로야구는 인기가 많지만 그 전에는 고교야구도 큰 관심을 받으며 인기가 많았죠. 어찌보면 비슷한 맥락입니다.

 

당시 인기 있던 스포츠로는 WWF(미국 프로레슬링), NBA(미 프로농구) 그리고 바로 농구였죠. 남자아이들은 이 세가지를 모두 즐겼지만 여자아이들은 이상민 뿐 아니라 당시 상당한 외모의 선수들이 여럿 있었기에 프로농구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연세대와 고려대 선수들은 막강한 실력으로 농구의 부흥기를 이끌었으며, 그들이 대학을 졸업해서 프로팀에 입단한 이후 선수생활을 하고 있을 때도 여전히 농구는 인기가 많았습니다.

 

 

 

응답하라1994 나정포스터이상민을 좋아 하는 주인공 나정

 

 

 

 

한국문화의 부흥기 1994년

 

90년대의 두 아이콘을 말씀드렸지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러 문화적 특징이 발현되던 시기였습니다. 음악으로는 80년대 중후반을 이끌던 이선희에 이어 막강한 변진섭 이문세가 전성기를 누리다 조금 시들해질 즈음이고, 댄스음악이 서서히 꿈틀대던 시기였습니다. 아직도 활동중인 DJ DOC를 비롯해서 듀스가 화려한 3년여간의 엄청난 인기속에 활동하기도 했으며, 강수지가 '보라빛향기'로 데뷔해서 남성팬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트롯트는 음악차트의 주류에 남아 있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초부터 엄청난 변화가 급격하게 찾아온 가요계는 드디어 1992년 서태지가 나왔고 변화는 본격화 되었습니다. 응답하라1997은 이런 변화가 정점을 찍고 다시 새로운 흐름이 발돋움 하던 시대였다면 1994는 한국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밑바탕을 확실히 다져가며 수많은 새로운 시도가 일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한국 문화의 방향을 잡아가며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특징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출발선상에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다수의 인물이 등장했다는 건데, 이 당시에 인기를 끌던 개그맨들이 아직도 주요 프로그램의 MC를 도맡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신동엽 유재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개그맨만 그런게 아니라 배우 역시 그러하며 대표적으로는 이병헌이 있겠습니다. 이병헌 또래의 배우 중 이름이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면 대부분 이 즈음 데뷔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도 영화계를 주름잡는 주류죠.

 

아무튼 응답하라 시리즈는 단순히 추억만을 말하고 있지 않고, 한국 문화의 중흥기를 만들어낸 밑그림이 그려지던 시절을 그림으로서 추억도 되살릴 뿐 아니라 세대공감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 만큼 이야기 될 꺼리 들이 많죠. 나중에는 응답하라 1991 이나 2000이 만들어져도 무리는 없지 않나 싶네요. 물론 응답하라1994가 성공을 거두어야 다음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소옥 연예타임